하루 한 생각

썩을수록 향기로운 모과처럼

레나따's Story 2013. 3. 23. 00:54

썩을수록 향기로운 모과처럼


물안개를 무장무장 피어 올리는 호수를 보러 나선
이른 새벽의 산책길에서였지요
시인은 모과나무 아래를 지나다가 바닥에 떨어져 있던
푸른빛의 모과 한 알을 주워 내게 건네주었습니다.
벌레 먹은 자리가 시커멓게 변색되어 마악 썩기 시작한
못 생긴 모과 한 알.
별 생각 없이 받아 차 안에 던져 놓았었는데
차를 탈 때마다 달콤한 향기가 나기 시작했습니다.
향기의 정체가 궁금하여 차 안을 뒤지다가
노랗게 잘 익은 문제의 모과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.
구석에서 익어가며, 썩어가며 향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습니다.

사람을 세 번 놀라게 만드는 나무가 모과나무이지요.
못생긴 모양에 놀라고, 향기에 놀라고, 마지막 떫은맛에 놀라고 마는.
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는 말이 생겨날 만큼
나무참외란 뜻의 목과(木瓜)에서 비롯된 모과란 이름이
못생긴 것들의 대명사가 된 데에는 외양을 중시하는 사람들의
잘못된 시각이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.

썩어가면서도 향기로운 모과처럼
사람도 나이 들수록 향기로울 수는 없는 것인지.
시인이 제게 건네준 모과 한 알 속엔
그런 숨은 뜻이 담겨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합니다.

-  백승훈님의 '썩을수록 향기로운 모과처럼' 中 -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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